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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 clinic]잠 잘 자는 게 최고의 입시 준비

  • 입력 2009.07.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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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신경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50대 초반의 남자가 그동안 상태가 좋았는데 며칠 전부터 잘 듣던 약이 먹어도 별로 효과가 없고 가슴이 답답하여 터질 것 같다고 호소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들 때문에 걱정이라고 했다.아들이 재수를 하는데 새벽 3~4시쯤 자고 아침에는 학원에 가야 되는데 10~11시, 심지어 오후가 되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한 보름 전부터 그러는데 그걸 보고 있노라면 속이 터지고, 일찍 일어나 학원에 가라고 말을 해도 통 듣지를 않는다고 했다.어려운 형편이라 부부가 다 일을 나가 뒷바라지를 하는데 그걸 몰라주는 것 같아 원망스럽기도 하고 아들의 장래가 걱정이 되어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이 일을 어쩌나’하는 마음뿐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 외에는 문제가 없는 착실한 학생이라고 했다. 병원에 한번 가보자고 해도 자기가 알아서 한다며 통 말을 안 듣는다고 했다. 그래서 잘 설득해서 데려오라고 일러주었다.오당육락, 삼당사락. 잠을 줄이면 합격할 수 있다 며칠 후 이 학생이 아버지와 같이 병원에 왔다. 겸연쩍은지 가볍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태도를 봐서는 별로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학생은 작년에 비교적 전통 있는 대학에 응시했다가 낙방하고 재수를 결심하면서 올해는 목표를 작년보다 훨씬 나은 대학으로 잡았다고 한다. 평소 수학과 과학에 자신이 있던 터라 암기과목만 좀 더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은 자신감도 있었다.그래서 3월부터 꽤 열심히 공부했다. 밤 12시 반이나 1시쯤에 잠자리에 들고 아침 7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했다. 항상 공부시간이 모자란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크게 무리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에 대학에 다니는 선배를 만났다고 한다.그 선배는 “6, 7, 8월 석 달이 고비다. 이때 성적을 안정권에 올려놓아야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며 격려했다. 이 말에 자극을 받아 학생은 무리한 계획을 세워 잠자는 시간을 두 시간쯤 줄이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아침에 늦게 일어나게 되고 그런 사정을 모르는 가족들은 ‘얘가 혹시 잘못된 게 아닌가’하고 염려하게 되었다.이런 문제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꽤 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 학교가 모두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는 총력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각종 과열현상이 생기는데 그 중의 하나가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필자가 입시를 치를 때만 해도 ‘5당6락(五當六落)’이란 말이 유행했다. 그러나 요즘은 ‘3당 4락’으로 변했다고 했다. 4시간 자면 떨어지고 3시간 자면 합격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기본욕구인 잠을 줄여서까지 한 자라도 더 보겠다는 수험생의 마음은 공감이 되지만 여기에는 신체·생리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따른다.우리의 신체와 정신은 주로 잠자는 동안 정비작업을 한다. 신체적으로는 성장 호르몬을 비롯해서 각종 호르몬이 나오고 상처가 있는 경우 그것을 치유하는 작용들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낮 동안에는 다른 활동도 해야 하니 전적으로 보수작업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잠을 자는 동안 신체 각 부위에서 생리적인 회복작용이 일어난다.정신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는 충분히 잠을 자는 것이 필수적이다. 수면시간 중 꿈을 꾸는 렘(REM) 수면 시간이 있는데 이 렘 수면시간을 박탈당하면 긴장과 불안을 느끼게 된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억상실 증세까지 나타난다.이러한 증세는 다시 정상적인 수면을 취하면 사라진다. 특히 렘수면은 학습 및 기억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낮 동안, 또는 밤늦게까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충분한 수면이 없으면 유용한 기억으로 남을 수 없다.시간 늘리기보다는 계획적인 공부가 중요해무조건 공부시간만 늘리면 된다는 식의 발상은 우리 몸의 생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 확보에 집착하는 데는 불안 심리도 작용한다. 사실 입시공부란 것은 알 것만 알면 되는 것이지 몇 시간 공부하느냐는 것과는 별개 문제다. 그런데 불안한 마음을 공부시간으로 달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불안하니까 잠이 와도 못 자고, 공부시간은 많은데 하루 종일 몽롱한 정신으로 있게 된다. 이럴 때 결과가 좋지 않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입시철마다 수석합격자들이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잠은 충분히 잤다”고 하는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닌 사실이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문제는 잠을 충분히 자고, 나머지 깨어 있는 시간동안 얼마만큼 집중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말에 수험생들은 공부할 과목은 많고 시간은 없다고 항변할 것이다.필자는 수험생들에게 주말을 잘 이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먼저 잠을 충분히 자고 알 것만 알면 된다는 식으로 여유 있게 공부하되 주중(週中)에 모자라는 시간을 주말에 보충한다면 시간이 그렇게 모자라는 것만도 아니다.요즘 입시가 너무 과열되어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온통 그러니 자기중심이 없으면 자칫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고 불안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면 우왕좌왕하게 되고, 그럴 때 흔히 보이는 두 가지 현상이 있다. 하나는 앞서 말한 신체 생리를 무시한 채 공부시간만 늘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나친 계획 세우기이다.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니 계획 세우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계획을 세우고 있는 동안은 마음이 편하다. 불안하지도 않다. 그러나 모든 계획은 실천이 따르지 않는 한 공허이고 좌절감만 더할 뿐이다. 그래서 또 계획을 세우게 된다. 잘 안 되는 계획을 메우기 위해 보다 과중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러다가 점점 현실에서 멀어진다.다소 차이는 있지만 요즘 수험생들은 공부시간을 무리하게 확보하려 들고 계획 세우는 데 시간을 많이 허비하는 것 같다. 이 두 가지를 많이 하면 할수록 더욱더 좌절감과 열등감만 더해지게 된다.우선 자기에게 필요한 공부를 하되 피곤하면 좀 쉬었다가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알아야 할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점검한다. 하루 이틀 지나면 그것들이 쌓여 실력이 되고 자기가 한 만큼의 결과가 나온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자신에 맞는 자기주도형 학습으로 알차게 정신건강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아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 고유의 능력이 있다. 그것을 잘 찾아 계발하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도움이 된다.요즘의 입시교육을 보고 있노라면 ‘정신 불건강의 표본’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입시로 인해 진정한 교육이 실종되어버린 상태다. ‘공인된 입시학원’으로 전락되어버린 학교, 교육자라기보다는 지식 전달자라고 해야 할 교사, 자기 적성이나 개성은 무시당한 채 점수로만 평가되는 학생들, 이 모두가 반(反)교육적이다. 모든 것이 얽히고설키어 누구의 잘못을 가릴 수도 없이 악순환만 계속되고 있다.이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교육계를 일대 혁신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보니 우선 입시생 개개인당 5당6락이니 3당 4락이니 하는 말에 휩쓸리지 말고 자기중심을 잡아 자기 신체나 정신 상태에 맞게 공부해간다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도 않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도 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