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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무새의 초상> 성지(性池)순례

Pilgrimage to sexy land

  • 입력 2010.02.01 00:00
  • 수정 2019.07.26 11:37
  • 기자명 정정만(성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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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역량을 집약한 선액(仙液)이요, 성지순례를 자축하는 폭죽이며 환희의 눈물이다. 현란한 불꽃이 어둔 동굴을 밝히면 2~3억의 성자(性子)들은 6,750 mm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광란의 향연을 시작한다.

나지막한 언덕배기에 큰 바위 하나 누워 있고, 그 바위 너머로 가파른 내리막길이 열려 있다. 그 길목에 아담한 분지(盆地)가 고즈넉이 앉아 있으니, 그곳이 아득한 옛날부터 성지로 알려져 온 곳이다.

거무죽죽한 땅에 우거진 풀숲이 천 년의 신비를 더해 줄뿐, 주변이나 내부 경관은 한낱 흔하고 볼품없는 동굴(洞窟)에 불과하다. 환기 구멍 하나 없어 매캐한 냄새가 역겹고, 물에 젖은 진흙처럼 질펀한 바닥, 그리고 물기에 젖어 축축한 벽면이 있을 따름이다.

간간이 오줌이 방광에 부딪쳐 철렁거리는 소리, 분괴(糞塊)가 어지럽게 구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대부분은 지루한 정적이 컴컴한 공간을 채우고 있는 그런 곳이다.

생물이라고는 유산균, 유디프테리아 등 8종 이상의 원생동물이 원래부터 그곳의 토박이이이며 주인임을 자처하고 군락(群落)을 이루어 살고 있다.

정확한 서비스, 정교하면서도 강인한 스트로크(stroke), 끈질긴 랠리(rally), 그리고 깜빡 정신을 잃는다.

갑자기 지진이 일어 큰 산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흩어진 구름을 불러 모아 그것을 타고 하늘을 난다. 먼발치에 천국의 모습이 보이고 눈앞에서는 수많은 별들이 명멸한다. 온 세계의 교회 종(鍾)이 일제히 함께 울리고 실체가 없는 예수님이 환하게 웃고 있다. 영혼을 쥐어짜내며 울부짖는 소리가 귓전을 스치며 진한 눈물을 세차게 뿌린다. 동굴 벽에서 잔잔한 진동이 감지된다.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

엑스타시(ectacy)다. 성지 순례자가 추구하는 최고의 예술이요 목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지 순례를 희망한다. 성지 순례는 그분에 대한 존경과 애정의 표시이며, 신심을 돈독하게 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성지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한한 행복과 스릴 넘치는 감격을 선사한다. 성지를 찾는 순간만은 온갖 잡다한 세상살이의 인연이나 악다구니로부터 해방될 수 있고 현실의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릴 수 있다. 한 사람이 일생동안 평균 5,000 번을 방문하고도 아쉬워하는 성지순례. 기력이 쇠잔해져 겨우 지푸라기 하나 잡을 힘만 남아도 성지를 찾고자 안간힘을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지 순례를 기념하기 위해 동굴에 뿌려지는 성수는 성지 순례자의 모든 힘과 재질, 역량을 집약한 선액(仙液)이요 성지순례를 자축하는 폭죽이며 환희의 눈물이다. 현란한 불꽃이 어둔 동굴을 밝히면 2~3억의 성자(性子)들은 6,750mm의 대장정(大長征)을 마무리하는 광란한 향연을 시작한다. 대가리와 꼬리를 비비 꼬며 올챙이 춤을 추는 놈, 서서히 꿈틀거리며 지렁이 춤을 추는 놈이 있는가 하면 나오자마자 죽어, 똘똘한 동료 틈에 끼어 밀려다니는 시신도 있다. 비록 시신이라도 이놈들의 팔자는 썩 좋은 편이다. 성지 근처에 얼씬하지 못한 채 비명에 간 성자도 많기 때문이다. 신문지나 화장지 위에 기력이 다할 때까지 바동대다가 고사(枯死)한 녀석, 정화조 안에서 맥이 풀려 분사(憤死)한 녀석, 뜨거운 욕탕 물에 익사한 녀석, 타액 효소에 화학사(化學死)한 녀석, 라텍스 고무주머니 안에서 질식사한 녀석들… 모두가 억울하게 요절한 비운의 성자들이다.

그것들도 정녕 하느님의 씨앗이거늘…성지를 향한 사무친 열정에도 불구하고 순례 길에 오를 수 없거나 성지 순례를 위한 잡기(雜技)적 예행연습이 초래한 결과이리라.

성지! 물방울 다이아몬드, 에르메스 가방, 파텍필립 손목시계로 가득 찬 알라딘의 보석 동굴도 아니요, 해맑은 수정(水晶)이나 석순(石筍), 종유석 따위를 볼 수 있는 천연 동굴도 아니다. 사람의 샘물이 솟아오르며 생명을 창조하는 하느님 사업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성지일 뿐이다.

“지치고 피곤한 자들아! 나 언제나 거기에 있나니, 모두 내게로 오라. 내 너희들을 쉬게 하리라. 비옥한 옥토에 씨앗 뿌려 대대손손(代代孫孫) 복 받고 행복할 지어다.” 오늘도 성지 순례자의 발길은 꾸준하다.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글피도 그 발길은 영구히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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