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art & medicine] 팔 자세의 몸짓언어

  • 입력 2010.04.01 00:00
  • 기자명 emddaily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팔(arm, brachium)이란 원래 보행에 쓰이던 다리에 대한 말로서 사람 및 원숭이류의 전지(前肢)를 말한다. 팔의 앞부분의 손가락은 물건을 잡을 수 있게 발달되어 있으며 해부학적으로 보아 어깨와 손목 사이의 부분으로, 꺾어지는 팔꿈치에서 위쪽을 상완(上腕) 또는 상박(上膊)이라 하며, 아래쪽을 전완(前腕) 또는 전박(前膊)이라 한다. 상완은 1개의 상완골이 축이 되고 있지만 전완에서는 요골(橈骨)과 척골(尺骨)이라는 두 개의 뼈가 평행하게 축이 된다.

팔의 근육은 팔을 굽힐 때 동원되는 굴근(屈筋), 펴는 신근(伸筋), 돌리는 회선근(回旋筋)을 포함하여 모두가 19개의 근육이 있어 크고 작은 운동이 모두 가능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고 느끼게 되는 사실이지만 남녀 간의 팔꿈치 모양이 다른 것은 단순한 성차에 의한 것으로 가볍게 넘기는데 실은 모양만이 아니라 기능에도 차가 있다. 즉 손바닥을 바닥에 대고 팔을 위로 폈을 때 남성들의 팔은 안쪽을 향하면서 일직선으로 되기 때문에 무엇을 던질 때 그 조준을 정확히 할 수 있는 형태를 하고 있으며, 여성의 경우는 팔꿈치 부위에서 약간 밖으로 휘어 외향적(外向的)으로 되면서 옆으로 넓어지기 때문에 아기를 부당기가 쉬운 형태를 하고 있다.


팔의 형태와 기능의 이러한 차는 남성의 경우는 자라면서 전완을 안쪽으로 돌리는 근육의 발육이 좋아지기 때문이며, 여성의 경우는 전완을 밖으로 돌리는 근육의 발육이 좋아지기 때문에 보게 되는 차이다.




호드러의 ‘진실 II’


이러한 팔의 외형의 차를 잘 표현한 그림으로서는 스위스의 화가 호드러(Fernando Hodler 1853-1918)의 ‘진실 II’(1903)라는 작품을 보면 이해하기가 수월해 진다. 그림의 중앙에는 알몸이 된 여성이 전면을 보며 팔을 들어 올리고 있으며 그 주위에는 6명의 남성이 머리에 검은 베일을 쓰고 뒷면을 향하고 팔을 올리고 있다. 이 그림은 철학이나 일상생활 그리고 법정에서 진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표현한 것으로 남성들의 눈을 가린 허위의 신화가 진실로 가다듬어진 정의의 여신의 감화를 받고 진실을 알게 된다는 것을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은 몸동작으로 표현하였다.


여기서 주의해 보아야 할 것은 여성의 팔 특히 전완은 밖을 향하고 있으며, 남성들의 팔 특히 전완은 안쪽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화가가 팔의 방향성이 성별에 따라 차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또 여성과 남성이 전면과 뒷면을 보는 자세의 차가 있기는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자세의 차로 인해서 팔의 방향성의 성별차를 더욱 뚜렷이 볼 수 있는 이점을 주는 그림이다.




폰토르모의 ‘마리아의 방문’


사람들이 반가운 사람을 만나서 인사를 할 때 서로의 팔로 팔 포옹을 하면서 다정함을 표시한다. 이탈리아의 화가 폰토르모(Pontormo 1494-1557)의 작품 ‘마리아의 방문’ (1530-32)에 마리아는 주민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주민은 마리아의 겨드랑에 손을 대고 팔 포옹인사를 하는 장면을 잘 표현하였다.




[1L]팔코네의 ‘검투사들’


또 팔의 자세로 표현되는 몸짓언어로 자기의 용맹성, 강인성을 표현하기위해 손을 허리에 올리고 양팔사이를 넓게 보이는 자세를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팔 자세를 잘 표현한 작품으로는 이탈리아의 화가 팔코네(Gladia Falcone 1607-56)의 ‘검투사들’이라는 그림에서 검투사들은 몸의 덩치를 크게 보이고 발달된 팔과 몸의 근육을 자랑하기 위해 손을 허리에 올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 검투사란 마치 오늘날의 프로레슬링과 같은 격투기를 하는 투사로서 이들은 실제 검을 들고 싸우기 때문에 지면 그것으로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검투사는 매우 엄청난 몸값으로 팔리며 또 이기면 대단한 상금을 받기 때문에 우선은 좋은 스폰서에게 팔려 몸값을 톡톡히 받아야하기 때문에 자기의 강인함과 용맹성을 과시할 필요가 있어 취하는 것이 허리에 손을 올려놓는 팔 자세를 취한 것이다.


팔이 자기의 방어자세로 취해지기도 한다. 즉 무엇인가 불안을 느끼거나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 스스로가 그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고 팔짱을 끼어 가슴에다 얹게 된다. 그것은 가슴에는 심장이나 폐와 같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장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팔짱낀 사람을 본다면 그 사람은 어떤 불안이나 근심 걱정, 공포나 위협을 느끼고 있어 자기도 모르게 새어난 팔자세인 셈이다. 그러나 팔짱낀 모양은 여러 형태로서 그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우리는 팔짱낀 형태로 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수 있는 몸짓언어이기도 하다.




레핀의 ‘나테쯔다 소타소바의 초상’, ‘파벨 트레티아코프의 초상’, ‘알렉산더 베르젤로비치의 초상’, 그리고 ‘담 옆의 우크라이나 여인’


팔짱낀 초상화를 많이 작품화한 러시아의 화가 레핀(Ilya Repin 1844-1930)의 그림을 보면서 설명하기로 한다. 그의 ‘나테쯔다 소타소바의 초상(1884)’은 가볍게 팔짱낀 노인의 모습이다. 양 팔이 느슨하게 평행하고 양손이 노출되고 있어 방어와는 관계없는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기 위한 팔의 처리임을 알 수 있으며, 그의 ‘파벨 트레티아코프의 초상’ (1883)도 양팔이 평행한 팔짱이기는 하나 한손만이 노출되고 다른 손은 노출된 손의 팔꿈치 밑에 파묻혀 있어 단순한 포즈가 아니라 약간의 신경 쓰이는 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트레티아코프 미술관의 창설자로서 그 미술관을 창설하면서의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해서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았던 때의 그림으로 이러한 것이 자기도 모르게 표현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의 작품 ‘알렉산더 베르젤로비치의 초상(1895)’의 주인공은 유명한 첼로 연주자로 아마도 발표회를 앞둔 모습인 것 같다. 팔이 교차되는 완전한 팔짱을 꼈으나 팔꿈치가 앞으로 나와 있어 손이 몸을 감싸고 있지는 않다. 만일 심각한 근심, 걱정, 공포나 위협에 직면하였다면 팔짱의 모양은 달라진다. 그의 작품 ‘담 옆의 우크라이나 여인(1876)’에서 보는 바와 같이 팔짱을 끼고서도 그 손으로 몸을 감싸 자기 안정을 찾으려는 몸짓도 취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그 근심 걱정이나 위험이 예고된 것이어서 그 위험의 정도를 알 수 있는 경우에는 팔짱 낀 손은 밑을 향하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축구시합 때 꼴 문대 가까이에서 반칙으로 프리킥을 하려면 상대방의 선수들은 그 앞에 일렬로 서서 팔짱낀 손을 밑에 내리고 겹쳐진 손으로는 성기를 가려 보호하려 하게 되는데 이것은 본능적인 자세이며 일부로 생각해서 취하는 것은 아니다.




[2R]뷔르츠의 ‘아름다운 로지누’와 ‘죽음과 소녀’


이렇게 예견된 위험 앞에서 본능적으로 팔짱을 낀 자세를 잘 표현한 그림으로는 벨기에 화가 뷔르츠(Antonie Wiertz 1806-65)의 ‘아름다운 로지누(1847)’이라는 작품을 들 수 있다. 중세 이래 ‘미는 덧없고 젊음도 덧없다’라는 개념으로 ‘죽음과 소녀’라는 주제의 그림이 많이 그려졌는데 ‘아름다운 로지누’도 그러한 맥락에서 젊음과 미모를 포함한 생명 자체가 덧없음의 무상관(無常觀)을 교훈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아름다운 꽃(생명이 덧없음의 표상)을 머리에 꽂은 관능적인 미녀가 해골과 대면하고 있다. 생명은 아무리 젊고 아름답다 해도 결국은 해골로 되는 덧없는 것임을 표현한 그림인데 해골과 대면한 미녀는 가슴은 노출되어도 팔짱을 밑으로 끼고 음부를 가리고 있다. 해골이 무섭다는 것은 알고 있어 예견된 공포이며 위험이기 때문에 팔짱을 위로 하지 않고 밑으로 하고 있다. 즉 팔짱과 손의 위치와 그 취하는 형태에 따라 예측된 공포나 위험인가 아니면 예기치 못한 것인가의 몸짓언어가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게 잘 표현한 그림이라 하겠다.


이렇듯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취하는 팔의 자세에 그 사람의 현재의 심리상태가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여러 거장들의 그림을 통해서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