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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Episode]추풍령 주민들 삶을 노래한 ‘추풍령’

  • 입력 2010.09.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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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굽이마다 한 많은 사연

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보는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 고개

(2절)

기적도 숨이 차서 목메어 울고 가는

추풍령 굽이마다 싸늘한 철길

떠나간 아쉬움이 뼈에 사무쳐

거칠은 두 뺨 위에 눈물이 어려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 고개

 

전범성 작사, 백영호 작곡, 남상규(68) 노래의 ‘추풍령’은 그림을 그리듯 지역을 사실감 나게 노래한 추억의 가요다. 추풍령(해발 221m) 주민들 삶의 발자취를 읊조린 한편의 서사시 같기도 하다. 구름처럼 흘러간 지난날의 힘든 인생을 높고 험한 지세의 추풍령에 접목시켜 놓은 곡이다. 고개가 하도 높아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간다고 했다.

추풍령역 경부선 역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

추풍령 부근에 있는 추풍령역은 기차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기도 했다. 증기기관차 급수탑이 있어서 물이 모자라는 기차는 이곳에 멈춰 물을 채우고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삐익~삑!’ 물을 채우고 떠나며 울리는 기적소리가 요란하던 그 시절의 추억어린 이야기다.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추풍령리에 있는 이 역은 경부선 역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 2003년 1월 28일 등록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된 급수탑이 역 구내에 서있다. 1905년 1월 1일 운송영업을 시작, 1941년 10월 25일 역 건물을 신축했고 2003년 7월 25일 지금의 역사가 다시 지어졌다. 추풍령역엔 하루 편도 14편(하행 8편, 상행 6편)의 무궁화호 열차가 선다. 하지만 2008년 11월부터는 화물운송이 멈췄다.

‘추풍령’ 노랫말 내용은 다소 슬픈 느낌은 준다. 그러나 추풍령사람들은 그 노래를 사랑하기에 ‘가을의 풍요가 있는 고개’를 뜻하는 원래의 지명 추풍(秋風)을 굳이 고집하지 않는다. 모두들 가난했던 1960~70년대 전부터 고갯길을 넘나들던 길손들의 애잔한 이야기들이 왜 아니 녹아들었겠는가.

이 노래는 1965년 남상규의 데뷔곡으로 그와 추풍령의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줬다. 그는 그 해 이 노래를 불러 대중들에게 깊게 파고들었다. 4분의 2박자 트로트리듬으로 나가는 이 노래는 충북 영동군민들의 주제가라 할 만큼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추풍령엔 ‘추풍령’ 노래비가 우뚝 서 있다. 영동군이 1988년 9월 5일 88서울올림픽 성화 봉송기념으로 세운 것이다.

해마다 ‘추풍령 가요제’ 열려

영동군은 또 해마다 ‘추풍령 가요제’를 열고 있다. 가요제엔 15∼60세 남녀 누구나 기성곡이나 창작곡으로 출전할 수 있다. 수상자에겐 상금과 가수인증서가 주어지고 한 해 동안 영동군 홍보가수로도 뛴다.

‘추풍령’ 노래 배경지역 영동은 ‘우리나라 음악의 고향’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세종대왕 때 아악을 정리했던 난계 박연(1378~1458년)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박연의 호(난계)를 딴 ‘난계국악당’(582석)은 1987년 문을 열어 올해로 23년이 됐다. 난계국악단은 국내 최초로 군 단위에서 만든 국악관현악단이다.

추풍령은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과 경북 김천시 봉산면 사이 소백산맥 중턱에 있다. 대관령, 문경새재와 함께 국내 3대 고개다. 금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분기점이자 두 강을 가르는 분수령이다. 이 고개는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로 영남사람들이 서울나들이 때 거쳐야했던 3대 관문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땐 군사요충지였다. 의병장 장지현(張智賢)이 의병 2000명을 이끌고 왜군 2만 명을 물리친 뒤 다시 밀려온 4만 명의 왜군에게 져 전사한 곳이다. 지금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1L]옛 추풍령 고갯길은 추억 속으로

조선시대 한양으로 과거보러가던 선비들은 이 고개를 넘지 않았다. 추풍령을 넘어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고 해서다. 주로 괘방령으로 돌아서 넘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길이 험해 교통사고가 잦았던 추풍령고갯길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한국도로공사가 2006년 5월 9일 추풍령고갯길을 대체할 추풍령대교와 영동나들목을 옮겨 개통했기 때문이다. 기존 고갯길은 국도와 이어져 도로기능을 하고 있다. 시골마을 추풍령과 추풍령역은 노래가 히트하면서 명소가 됐다. 영동군이 4번국도 추풍령고개 부근 터(5000㎡)에 공원을 만들고 있다.

‘추풍령’ 노래를 부른 남상규는 1942년생으로 1967년 일본 빅터레코드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현지로 진출했다. 일찍 일본으로 간 ‘원조한류 가수’인 셈이다. 그는 일본서 3장의 정규앨범과 6장의 싱글음반을 냈다. 2004년 2월 귀국, ‘임과 함께 놀던 곳에’가 담긴 앨범을 발표했다. 일본서 수차례 국내 복귀를 꾀했으나 가슴에 와 닿는 노래가 없어 미루다 2003년 작곡가 배준성 씨로부터 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고 들어왔다. 중년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그는 요즘 후배양성을 위해 기획사를 운영 중이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가수로도 유명하다. 박 전 대통령은 1974년 광복절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저격으로 육 여사를 잃은 이듬해 8월 6일 거제시 장목면 저도(그 땐 진해시 소속)에 있는 청해대에서 ‘일수’(一首·한 줄의 시란 뜻)란 시를 썼다. 이 시에 배준성이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고 ‘임과 함께 놀던 곳에’란 제목으로 발표한 것. 노래는 아내와 거닐던 곳에 혼자 와보니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더 간절해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래를 부른 가수는 바로 남상규다. ‘추풍령’ ‘고향의 강’ 등을 불러 폭발적 인기를 끈 그는 2004년 2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임과 함께 놀던 곳에’가 담긴 음반을 전해 매스컴을 탔다.

한편 ‘추풍령’ 작곡가 백영호 선생은 2003년 5월 21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폐렴합병증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고인은 1964년 ‘동백 아가씨’를 작곡, 이미자를 국민가수로 올려놓은 음악인이다. 1920년 부산서 태어나 만주신경음악학원을 수료한 고인은 4000여 곡을 작곡했다. 그의 큰 아들은 진주에서 병원을 하면서 부친의 기념관을 운영 중이다.

‘추풍령’ 작사가 전범성(작고) 씨는 1929년 충북 옥천서 태어났다. 1959년 ‘행복의 조건’으로 시나리오작가 데뷔 후 ‘산 색시’ ‘사위소동’ ‘비애’ ‘주식회사’ 등의 작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