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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Episode]“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홀로 선 나무의 외로움 노래한 <겨울나무>

  • 입력 2011.01.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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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2절)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 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 피던 봄 여름 생각 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이원수 작사, 정세문 작곡의 <겨울나무>는 8분의 6박자 동요다. 요즘 같은 한 겨울에 부르면 감칠맛 나는 나무소재의 노래다. 두 토막형식의 라장조 곡으로 추운 겨울 눈 쌓인 응달에 홀로 서있는 나무의 외로움을 잘 그려냈다.

노래가 만들어진 건 1950년대 후반.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KBS요청으로 탄생됐다. 이원수 선생의 시를 받은 정 작곡가가 사회에서 외롭게 지내는 사람들과 묵묵히 교단을 지키는 선생님들 모습을 떠올리며 곡을 만들었다. 그는 겨울철 나무가 ‘올바른 교육자의 길을 가겠노라’ 다짐했던 자신의 처지인 듯해 설레는 맘으로 곡을 지었다고 생전에 회고했다. 얼어붙은 벼랑에서 푸른 하늘을 지붕 삼아 서있는 겨울나무의 믿음직함도 담았다.

7·5조 기본으로 한 노랫말 쓸쓸한 느낌

7·5조를 기본으로 한 <겨울나무>의 노랫말은 왠지 쓸쓸한 느낌을 준다. 나무를 사람에 견줘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북녘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 추운 겨울날 옷도 입지 않고 응달에 서 있을 나무가 생각난다.

노래에 나오는 겨울나무는 조용히 쉬고 있는 모습이 아니다. 다가올 봄을 위한 잎눈과 꽃눈이 살아서 숨 쉬고 있지만 겉으론 다 죽은 나무 같다. 지난날의 추억을 간직하며 곧 올 봄을 기다리며 참고 있을 뿐이다. 꽃이 지고 잎까지 떨어져 아무도 반기지 않은 외로운 겨울나무는 세찬 바람에 입 맞춰 휘파람을 불며 버티고 선 모습이 그려진다.

이 노래는 태어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세상소식들을 바람결에 전해 들으며 굳세게 살아가는 겨울나무의 인내심을 배우게 한다. 겨울 가면 꽃피는 봄이 오고 녹음의 계절 여름, 결실의 가을이 올 테니 말이다. 그래서 <겨울나무>는 외로움, 굳건함, 침묵, 희생이 상징어로 요약된다. 초등학교 6학년 음악교과서에 실려 반세기 이상 ‘국민 동요’가 된 이 노래는 조연환 전 산림청장의 애창곡이기도 하다.

춘천교대(전 춘천사범학교)에 가면 이 노래 작곡가 정세문(1923~1999년) 선생의 노래 조형물이 서있다. 이 대학 1회 출신으로 우리나라 동요보급운동의 중심역할을 한 그를 기리기 위해 2002년 세운 것이다. 그의 노래비는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산1-2 분당중앙공원 야외음악당에도 있다. 후학과 제자, 친지들이 2000년 3월 25일 세운 비로 백색화강암 비대 위에 산을 형상화한 비신을 올려놨다. 검은 오석(烏石) 비신엔 ‘閑石 鄭世文(한석 정세문) 선생은 평생을 동요 및 가곡의 작곡과 음악교육에 헌신한 분이며 <겨울나무>는 어린이를 비롯한 우리국민 모두가 사랑하는 선생의 대표적 노래’라고 적어 놨다. 추모 글 오른쪽엔 <겨울나무> 악보와 선생의 약력이 새겨져 있다. 1999년 1월 8일 분당구 구미동에서 별세했음도 밝히고 있다.

1950년대 후반 KBS 제작요청으로 탄생

묵묵히 교단 지키는 선생님들 떠올리며 작곡

강원도 출신인 고인은 1943년 춘천서 초등학교 교사로 교편을 잡았다. 이어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경기여고 음악교사, 서울대 음대 교수를 지냈다. 지금의 교육인적자원부인 문교부 편수국장으로 좋은 교과서 만드는 일에도 힘을 썼다. 1948년 방송어린이노래회(KBS 어린이합창단) 초대지휘자며 한국음악교육학회장, 건국대·단국대 교수, 한국교육개발원 연구교수로도 몸담았다. <겨울나무> 외에도 <그리운 언덕> <어린이 행진곡> <빛내자 내 조국> 등 주옥같은 동요를 줄줄이 쏟아냈다. ‘한국 동요합창곡 전집’, ‘동요작곡 1, 2집’, ‘가곡작곡집’, ‘교실의 노래 200곡 집’, ‘기초음악’, ‘피아노 반주법’, ‘새 음악’ 등의 저서가 있다.

정세문 선생은 ‘아빠 힘내세요!’ 노래로 유명한 작곡자 한수성 씨(교사)가 오늘이 있기까지 정신적 스승노릇을 했다. 한 씨가 1984년 제2회 MBC 창작동요제에 떨어져 실의에 빠졌을 때 심사위원이었던 정 선생이 ‘좋은 노래가 떨어져서 아깝다’는 편지를 보냈다. 한 씨는 편지를 받고 너무 감격해 엉엉 울었다. 그는 편지에 힘을 얻어 1989년 창작동요제 때 ‘연날리기’로 대상을 받았고 1997년 MBC 창작동요제 땐 ‘아빠, 힘내세요!’로 입상했다.

<겨울나무> 노랫말을 쓴 이원수 선생(1911년 11월 17일~1981년 1월 24일)도 보통 분이 아니다. 유명한 동요작사가로 인기 동요 <고향의 봄> 노랫말을 썼다. 기존의 외형률 중심의 동요에서 벗어나 내재율 중심의 현실 참여적 동시를 쓴 작가다. 나무, 숲, 꽃을 소재로 한 동요 <겨울나무>, <숲속 나라>, <민들레>, <고향의 봄> 등의 노랫말이 좋은 사례다.

작사가 이원수, 양산서 나서 창원서 자라

1911년 양산에서 아버지 이문술(李文術), 어머니 진순남(陳順南)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이듬해 창원으로 이사했다. 마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 윤석중 등과 ‘기쁨사’ 동인이 됐다. 1930년 마산상고를 졸업하고 함안금융조합에 다니다 1935년 독서회사건으로 붙잡혀 1년간 옥살이를 했다. 1937년 함안금융조합에 복직, 8·15해방 때까지 일했고 1945년 10월 경기공고 교사로 취직돼 서울로 올라왔다. 이어 박문출판사 편집국장, ‘소년세계’ 주간, 한국아동문학회 부회장, 한국자유문학가협회 아동문학 분과위원장, 서울시문화위원회 문학분과위원 등을 지냈다. 또 1961~70년 삼화출판사 편집위원,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 등 한국아동문단의 요직들을 거쳤다.

1968년 마산시 산호공원에 노래비와 1981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문학비가 세워졌다. 한때 이동원(李冬原)이란 필명을 쓴 그는 1926년 방정환이 펴낸 ‘어린이’에 <고향의 봄>이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해방 뒤엔 동시보다 동화를 많이 썼다. 1953년 발표한 장편동화 <숲속의 나라>는 전래동화를 뛰어넘는 수준 높은 작품이다.

한편 창원시립도서관은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8년 1월 ‘이원수문학관’(www.leewonsu.co.kr) 홈페이지를 열었다. 또 창원 남산공원엔 <고향의 봄>을 기리는 진달래동산도 가꿨다.

동장군이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지금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겨울나무>를 불러보자. ‘겨울나무’처럼 인내심을 갖고 버텨내면 희망의 2011년 새해가 활짝 열릴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