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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medicine]헬렌 켈러를 통해 본 후각(嗅覺)의 경이로움

  • 입력 2011.02.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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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L]보지도 못하고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삼중고의 장애가 있는 미국의 여성작가 겸 활동가 겸 교육가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청각 장애인은 아니었다. 생후 19개월 후 당시 성홍열(猩紅熱)이나 수막염(髓膜炎)이라 생각되는 병을 앓아 위장과 뇌에 심한 출혈이 생겼다. 병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그 결과 시각과 청각을 잃고 말았다.


1886년 그녀의 어머니는 당시 청각장애인 치료 전문가이자 전화 발명가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소개로 보스턴에 있는 펄킨스 시각장애학원을 찾아갔다. 그 학원에는 당시 겨우 20살이며 시각 장애를 가진 졸업생 조안나 맨스필드 설리번 매이시(Johanna Mansfield Sullivan Macy 1866-1936)가 특수교육선생으로 있었는데 그녀를 헬렌 켈러의 지도 선생으로 정하게 되었다. 이것이 헬렌 켈러와 설리번의 49년간의 관계의 시작이 되었다.


설리번도 또한 불행한 과거를 지니고 있는 여성이었다. 10살 때 남동생과 함께 고아원에 보내져 거기서 학대와 고통의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성장했던 것이다. 불결하고 빈약한 환경 가운데서 남동생은 죽어 갔다. 그녀도 또한 눈병에 걸려 실명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그 후 펄킨스 시각장애학원에서 교사를 하고 있던 무렵에 헬렌 켈러의 지도교사가 되었던 것이다.


아직 겨우 20세가 된 설리번은 인내심이 강하고 애정이 깊고 그리고 신앙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본 헬렌 켈러는 이미 6세가 되었는데도 아무런 교육이 되어 있지 않았고 손으로 음식을 먹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닥치는 대로 주위의 물건을 집어던지는 야수 그 자체였다.


그날부터 설리번과 삼중고의 소녀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얼굴을 씻는 것도 머리카락을 빗는 것도,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하는 것도 헬렌과 격투를 하면서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단지 울어대는 것과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해왔던 헬렌은 엄격한 교육에 전신으로 반항했다.


설리번은 신중하고 끈기 있게 단 하나 남아있는 인식의 창구인 촉각을 통해서 암흑에 갇힌 영혼을 향해서 자극을 준 것이다. 그때까지 갇혀있던 헬렌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열리기 시작한 것은 지화법에 의해서 <인형>이란 말을 헬렌이 알게 된 때였다. 7살까지는 약 60개가 넘는 수화를 만들어 가족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인 보스턴 퍼킨스 학원과 뉴욕 라이트-휴머슨 학교를 졸업한 헬렌은 16세의 나이에 하버드대학교 부속학교인 래드클리프 칼리지에 입학했다.


지화법이나 점자, 발성을 배워 정상인 이상의 지식을 얻어서 대학에 입학한 그녀는 4년의 과정을 이수한 후 세계 최초의 대학교육을 받은 맹·농아로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였다. 1904년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독일어를 비롯해 5개의 언어를 구사했으며, 미국 역사 최초로 학사학위를 취득한 시청각 장애인이 되었다.


이 기적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경탄과 찬사를 받았다. 그 해 센트 힐 박람회에서 <헬렌 켈러의 날>이 제정되어 헬렌은 처음으로 강연을 했다. 그녀는 미국 본토는 물론 해외에서도 강연 여행에 나서 맹인 및 신체장애자에 대한 세상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고 사람들에게 커다란 희망과 복음을 심어 주었다.


그 후 자기처럼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나의 생애’, ‘신념을 가져라’ 등의 저서를 내어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이라도 정상인과 똑같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세계 각지를 다니며 강연을 하면서 맹·농아의 교육과 사회 시설개선에 힘썼다. 그녀는 23살 때 ‘단 3일만 볼 수 있다면…’ 이라는 제목의 자기 자서전을 펴냈는데, 하나님의 은총으로 사흘만 볼 수 있게 된다면 보고 싶은 것을 자세하게 적은 글이다. 그 글 가운데에서 가장 보고 싶은 것은 ‘일어나는 즉시 동트는 광경을 바라본 후, 다음날도 새벽의 여명을 한 번 더 보고 거리로 나가’라는 표현이 있다.


이러한 헬렌 켈러의 마음을 알아서 그림으로 표현한 듯한 독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e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아침햇살 속의 여인’ (1818경)이라는 작품이 있어 이 그림을 보면 그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한 여인을 뒷모습으로 표현하였으며 고요함의 상징인 아침에 즉 모든 일상이 시작되는 시간대에 여인이 양손을 벌이고 마치 눈앞에 있는 자연을 맞이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가 동작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여성을 자연에 가까운 커다란 에너지를 지닌 존재로 표현한 것으로 이는 마치 그녀의 마음을 대변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2R]헬렌 켈러는 냄새만으로 사람들의 직업을 알아낼 수 있다고 썼다.


“나무(목수), 쇠(대장간 사람), 페인트(칠하는 사람), 약(약사) 냄새가 그것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의 옷에 달라붙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내 옆을 스쳐갈 때, 나는 냄새로 그가 있었던 곳-부엌, 정원, 병실의 흔적을 느끼지요.”


또 그녀는 날씨까지도 예측했다고 한다.


“나는 후각을 통해 다가오는 폭풍을 일찌감치 알 수 있었습니다. 먼저 폭풍을 예감하는 흥분, 작은 떨림, 콧속의 진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폭풍이 다가옴에 따라 콧구멍은 커지고, 더 강하고 멀리 퍼지는 대지 냄새의 홍수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다 마침내 뺨에 빗방울이 튀는 것을 느끼게 되지요. 폭풍우가 물러가면, 냄새는 점점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저 공간 너머에서 소멸 됩니다.”


기상 변화를 냄새 맡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밖에도 많다. 물론 동물 역시 뛰어난 기상학자다(예를 들면 소는 폭풍이 오기 전에 눕는다).


영국의 화가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의 작품 중에는 기상의 이변에 대한 그림이 많은데 그중에서 ‘멀리 강과 만이 보이는 풍경’(1845)과 ‘석세스 주의 라이’(1823)의 두 그림을 번갈아 합쳐서 보면 헬렌 켈러가 기상의 이변을 감지한 것 같은 상상을 할 수 있어 두 그림을 함께 첨부하는데 이것을 본 다음에 그녀의 글을 읽으면 더욱 실감이 난다.


대지는 습기를 머금고 출렁이면서 커다란 검은 야수처럼 숨을 쉰다. 기압이 높아지면 대지는 숨을 멈추고 증기는 토양의 헐거운 틈새와 갈라진 곳에 머문다. 기압이 낮아지면 대지는 숨을 내쉬고 증기는 다시 하늘로 떠오른다. 농장의 동물들도 이렇게 대지에서 방출되는 이온의 냄새를 맡음으로써 지진을 예측하는지도 모른다.


헬렌 켈러는 생의 향기 나는 모든 갈피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덩어리로 읽는 모든 ‘층’을 낱낱이 해독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헬렌 켈러는 오래된 시골집을 냄새로 알아보았는데, ‘거기에는 대를 이어 살아온 가족, 식물, 향수와 커튼이 남긴 여러 가지 냄새의 층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눈멀고 귀먹은 그녀가 가까이 있는 물건 속에서 그 사람의 성벽(性癖)뿐 아니라 삶의 질감과 외양까지 어떻게 그렇게 잘 이해할 수 있었는가는 큰 수수께끼다. 헬렌 켈러는 아기에게는 어른들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 ‘개성적인 체취’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관능성은 냄새를 통해 표현되었으며 오랜 매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숨결은 여성에 비해 더 강하고, 더 생생하며, 더 다양합니다. 젊은 남자의 냄새에는 자연을 상기시키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은 불이고, 폭풍이며 바다의 소금과 같지요. 그것은 활기와 욕망으로 고동칩니다. 그것은 강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모든 것을 암시하지요.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육체적 행복을 느낍니다.”


헬렌 켈러는 노력만 한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신념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위대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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