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art & medicine]피비린내 부르는 춤과 속죄의 그림

  • 입력 2011.03.01 00:00
  • 기자명 emddaily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L]피비린내가 난다는 것은 몸에 상처를 입고 다량출혈이 있을 때 나는 것으로 그 정체는 쇠 비린내이다. 이렇게 쇠 비린내가 나는 이유는 혈구 속에 함유되어 있는 헤모글로빈이라는 성분에 철이 함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쇠 성분이 내는 비린내인 것이다. 그런데 피비린내를 부르는 춤을 춘 여인이 있는가 하면 피비린내를 통해서 자기의 죄를 사죄한 화가가 있어 그 사연을 살펴보기로 한다.
성서에 나오는 여성으로 여러 예술작품 즉 그림, 희곡, 오페라 및 소설 등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살로메(Salome)라는 여인이 있다. 그것은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충분한 소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헤로데 왕은 자기의 형의 부인인 헤로디아를 가로채서 자기 부인으로 삼았으며 전 남편의 딸 살로메는 헤로데 왕으로 볼 때는 조카딸인데도 연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아는 예언자 요한은 “형수를 가로 챈 것은 근친상간(近親相姦)의 죄에 해당된다”고 비난하였기 때문에 투옥 되었으며 요한이 예언자임을 겁낸 헤로디아 왕비는 어떻게 해서라도 요한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하고 모략을 꾸미기 시작하였다.
헤로디아는 남편 헤로데 왕이 의붓딸인 살로메의 춤에 홀딱 반한 사실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살로메에게 어떤 부탁을 해도 왕이 거절할 수 없도록 약속을 받아내라고 부추겼다.
헤로데는 아름다운 살로메의 춤추는 모습만 보면 넋이 나가곤 했는데 헤로디아는 바로 이점을 노려 딸에게 왕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약속을 해야만 춤을 추겠다고 하라고 타일렀다. 어머니의 지시대로 살로메는 관능적이고 간드러진 춤을 추다가 멈추고 계부에게 세례 요한의 목을 주면 춤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던 헤로데 왕은 무의식적으로 그러마하고 약속을 하였다.
세례 요한은 방탕하고 사악한 헤로디아와 냉혹하고 무자비한 살로메의 음모로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예술인들은 세례 요한의 비극적인 삶과 죽음의 드라마에 깊이 매혹되었다. 즉 성자의 목을 요구하는 냉혹한 미녀와 간통한 왕비의 눈 밖에 난 죄로 비참하게 살해된 성자의 극적인 운명이 흥미를 자극한 것이다.
그래서 오스카 와일드가 희곡 형식으로 쓴 단막극 ‘살로메’(1896)는 성서의 내용에 에로틱한 양념을 가미해 선정적인 러브스토리로 각색했는데, 첫눈에 사랑에 빠진 살로메의 연정을 거부한 세례 요한을 증오한 나머지 잔인하게 보복한다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바꾸었다.
이러한 내용을 맞받아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1898)도 이에 가세하여 살로메 연작을 그렸다. 그래서 살로메하면 곧 모로를 연상하리만큼 그의 살로메 작품들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그의 그림 ‘헤로데 앞에서 춤을 추는 살로메’(1874)는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에 나오는 ‘일곱개 베일의 춤’을 추는 것을 그린 것인데 일곱개 베일의 춤이란 요염한 댄서인 살로메가 일곱개의 엷은 옷을 하나씩 벗으면서 헤로데의 욕정을 자극하는 관능적인 춤을 말하는데 살로메는 헤로데가 초조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춤을 시작하는 장면이다.
화면 중앙에 화려한 온갖 보석으로 마치 갑옷을 입은 것처럼 치장한 살로메의 한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은 앞으로 뻗어 허공을 가르고 있다. 땀이 스며 나오기 시작해 빛나는 흰 피부에 거칠게 몰아쉬는 숨결로 부푼 가슴의 관능미는 벌써 노안의 왕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모로의 살로메에 대한 또 하나의 그림 ‘출현’(1876)은 살로메가 일곱개 베일의 춤을 추면서 옷을 하나씩 벗어 이제는 나체가 될 찰나이다. 그녀가 왼쪽 손으로 가리키는 허공에는 목이 잘려 피가 떨어지는 요한의 머리가 나타나 있다. 졸지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요한은 눈을 부릅뜬 채 사악한 요부를 노려본다. 살로메 역시 이에 질세라 표독한 표정으로 허공에 떠있는 요한을 향해 거칠게 손가락질하며 맞서며 살의를 표현한다.
수채화로 그린 ‘출현’의 장면은 요한이 참수 당하기 전의 장면으로 허공에 뜬 요한의 머리는 왕이나 왕비 그리고 망나니 등 그 방안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며 오로지 살로메의 눈에만 보이는 환시(幻視)현상으로 그린 것이다. 즉 얼마 후에 벌어질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살로메는 알고 이를 환시를 통해 보고 있는 것이다.
[2R]살로메의 환시에 나타난 예상대로 헤로데 왕은 요한의 목을 칠 것을 망나니에게 명한다. 그래서 망나니가 요한의 목을 치는 장면도 여러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는데 그 가운데서도 이 줄거리에 잘 맞게 표현된 것이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가 그린‘세례 요한의 참수’(1608)와 ‘세례 요한의 목을 받는 살로메’(1609-1610)라는 그림이다.‘세례 요한의 참수’는 그가 그린 것 중에서 가장 큰 그림이다. 요한은 두 팔이 뒤로 묶여 땅에 눕혀졌고, 망나니가 그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첫 칼에 목을 베지 못한 망나니는 허리춤에서 다시 단도를 꺼내든다. 살로메의 하녀가 그의 머리를 받아가려고 대야를 준비하는데 늙은 하녀가 옆에서 전율을 느끼며 바라본다. 터키식의 복장을 한 간수는 이 잔인한 살육을 지시하고 있다. 이 그림은 지금도 말타 섬의 대성당에 걸려 있다.
무엇보다 흥미 있는 것은 참수 당하는 요한의 얼굴을 자기 얼굴로 표현해 즉 요한과 자기를 동일시하여 자기도 피의 세례 성사(聖事)를 받았으면 하는 자기의 간절성을 표현하였다.
탁월한 예술적인 감각을 지닌 예술가의 마음속에 사악한 범죄성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좀처럼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 이러한 상극되는 양면성을 지닌 화가가 바로 카라바조였다. 그는 폭행, 명예회손, 성추행 그리고 살인 등의 갖은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신성한 교회제단의 그림을 계속 그리는 이색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1606년 5월 28일 일요일에 그의 생애에 있어서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돈내기 공놀이를 하며 놀다가 그가 돈을 잃게 되자 그것이 싸움으로 번져 그는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상대를 사정없이 찔렀다. 그의 칼을 맞은 친구 라누초 토마소니(Ranuccio Tomassoni)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죽는 일이 벌어졌다. 즉 그는 살인을 하게 된 것이다.
카라바조는 자기그림의 주인공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어 자기의 감정이나 의사를 표현해 그 당시의 자기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곤 했다. 그가 그린 ‘마테오의 순교’(1599-1600)라는 그림에서도 마테오를 살해하는 장면에서 마테오는 바닥에 쓰러져있고 혈기 넘치는 망나니는 마테오의 오른팔을 움켜쥐고 칼을 들이대고 있다. 순교자의 손끝은 천사가 내려준 종려나무가지와 연결되어 있다. 벌써 치명의 일격을 받았는지 그의 복부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으며 그의 두 팔을 벌린 십자가형의 동작은 최후의 의식행위를 행하는 듯싶다. 그런데 그 망나니의 얼굴을 확대해서 잘 관찰하면 그 얼굴은 틀림없이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이다. 즉 자기를 죄인으로 표현해 실제 자기가 지은 죄를 피비린내 나는 속에서 속죄하는 진실성을 나티내려 한 듯이 보인다.
또 그가 그린 ‘다윗’(1609-1610)이라는 그림은 다윗이 거인 골리앗의 목을 쳐서 그 잘린 두부를 움켜쥐고 있는데 골리앗의 얼굴은 자기의 죄 많은 중년의 얼굴로 표현하였으며, 다윗은 자기의 젊었을 때의 얼굴을 그려 넣어 아무런 때가 묻지 않은 카라바조가 죄 많은 카라바조를 살해한 것으로 참회를 표현하기 위해 이중 자화상을 이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렇듯 살로메는 피비린내를 부르는 춤을 추었으며 카라바조는 피비린내 나는 속에서 피비린내를 이용하여 자기가 지은 죄를 속죄하는 아이로니컬하게 그림을 통해서 감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