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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요사에 남긴 또 하나의 명곡, 원점

  • 입력 2014.01.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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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전국노래자랑 결선대회 계기로 히트, 1986년 설운도 작곡·취입해 음악실력 인정 혼혈가수 오세근, 병든 딸 생각에 울며 불러 눈길 사랑했던 그 사람을 말없이 돌려보내고 원점으로 돌아서는 이 마음 그대는 몰라 수많은 사연들을 네온 불에 묻어 놓고 무작정 사랑을 사랑을 넘어버린 나는 나는 정말 바보야 눈물 속에 피는 꽃이 여자란 그 말 때문에 내 모든 걸 외면 한 채 당신을 사랑했어요 수많은 사연들을 네온 불에 묻어 놓고 무작정 가슴을 가슴을 열어버린 나는 정말 바보야 이호섭 작사, 설운도 작곡, 설운도 노래의 ‘원점’은 1986년에 발표된 대중가요다.

설운도(본명 이영춘)가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지구레코드사로 소속을 옮기고 처음 취입한 것이기도 하다. 이 노래가 히트하게까지 가슴 뭉클한 에피소드가 있다. 음반으로 취입한 가수는 설운도지만 노래를 본격적으로 알려 히트시킨 사람은 혼혈가수 오세근이다.

1987년 KBS 전국노래자랑 상반기 결선 때 오세근은 이 곡을 불러 최우수상을 받았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 딸(한나)을 위해 출전하게 됐다는 그는 앵콜 송을 부를 때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2절 ‘눈물 속에 피는 꽃이 여자란 그 말 때문에…’란 대목에서 목이 메여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딸과 아내를 끌어안고 눈물을 쏟는 장면이 연출됐다.

눈물범벅이 된 그는 수상소감 대신 병에 걸린 딸 얘기로 시청자들을 찡하게 만들었다. 그 바람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원점’은 삽시간에 전국을 강타하는 히트곡이 됐다. ‘원점’을 불러 가수가 된 오 씨 사연이 전국에 알려지면서 노래도 함께 뜬 것이다.

KBS 전국노래자랑을 비롯하여 1988~93년 열린 노래자랑대회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부른 가요로 기록됐다. 가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의 하나 우리 가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의 하나인 ‘원점’은 곡을 만든 설운도를 재조명하게 한 수작이다. 오리지널가수의 침체로 묻힐 뻔했던 이 노래는 오세근이란 아마추어 가수에 의해 재탄생됐다.

이후 ‘원점’은 메들리음반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끼며 국민애창가요로 자리매김했다. 방송에서 이 노래를 부른 오세근은 정식가수로 데뷔해 활동을 시작했다. 1986년 여름 방송을 본 서울 왕십리 풍전호텔 나이트클럽 사장 눈에 띄었다. 매니저계약을 한 뒤 오아시스레코드에 전속돼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오세근은 ‘서울민들레’를 타이틀로 한 데뷔앨범과 ‘한강’을 타이틀로 한두 번째 앨범, 이호섭 작곡의 ‘이제는’ 등 3장의 음반을 냈다. 한 TV방송에선 그의 삶을 소개한 프로그램도 방영해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원점’ 노랫말을 쓴 이호섭씨는 경남 의령군 지정면 출신으로 마산에 있는 경남대를 다녔다. KBS 전국노래자랑대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팔방미인이다. 작사, 작곡은 물론 TV, 라디오방송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뛰었다. 게다가 가요계에 뛰어든 지 15주년을 맞아 골든 앨범 ‘텍사스 룸바’를 내놨다. 1984년 작사가로 데뷔, 1990년 작곡가 데뷔에 이어 2000년 5월 가수로도 신고식을 치른 것이다.
 
1982년 KBS ‘신인탄생’ 통해 가수 데뷔 노래를 작곡하고 취입한 설운도는 1958년 6월 23일 부산 해운대에서 유복한 집안의 3남3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병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형제들이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일을 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친척의 도움으로 어머니가 사업을 해 생계고민에서 벗어나자 그는 어릴 적부터 꿈꿨던 가수를 하기 위해 제대 후 무작정 상경했다.

늦은 밤 서울에 도착했으나 갈 데가 없었던 그는 통금시간이 다가오자 역 주변 청소리어카 안에서 자다 도둑으로 몰려 파출소로 끌려가기도 했다. 낮엔 식당, 주유소, 청과물상회, 김밥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자신이 설 무대를 찾아다녔다. 거처가 없어 빈 점포에서 종이상자를 깔고 담요 한 장으로 겨울을 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꿈을 잃지 않자 조금씩 그를 알아주는 이들이 생겼다. ‘노래를 꽤 잘 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한 매니저의 눈에 띄어 피아노와 작곡공부를 했다. 그로부터 5년간 음악공부에 매달렸다.

그렇게 해서 1982년 KBS가 매주 방영한 ‘신인탄생’ 프로그램에서 5주 연속 1등을 해 프로가수가 됐다. 하루 3갑씩 피던 담배는 끊었고 술은 안 마셨다. 그는 신인가수 때 부리부리한 눈에 까무잡잡한 피부로 무도인을 떠올리게 했으나 가창력이 좋아 1983년 6월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나가 ‘잃어버린 삼십년’을 불러 이름을 알렸다. 하루에도 몇 번 방송에 출연, 무명의 딱지를 떼는 기회를 잡았다. 가요계에서 잘 나가던 매니저 안태섭씨 아래에 있었던 그는 실력 있는 신인 진보라, 제법 입지를 다진 숙자매와 안 씨 아파트에 생활하면서 실력을 쌓았다.

국가적 행사가 돼버린 이산가족 찾기 방송은 몇 달간 이어졌고 그는 이 프로그램을 디딤돌로 진가를 인정받았다. 그러던 중 매니저사건이 터지고 소속사를 지구레코드사로 옮겨 ‘원점’을 냈다. 하지만 홍보를 제대로 못해 그저 그랬다. 이어서 낸 ‘나침반’도 반응이 별로였다.

그는 처음 있었던 오아시스레코드사로 돌아가 추억의 노래를 묶은 메들리음반을 내 재기를 노렸다. 한 때 일본에도 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그는 ‘다함께 차차차’ ‘쌈바의 여인’ ‘여자 여자 여자’ 등 히트곡들을 줄줄이 발표해 성공했다. 배우출신인 부인(이수진)과의 사이엔 미국 LA 페닌슐라 하이스쿨을 나온 가수 아들(이승현)이 있다.

2남1녀 중 장남인 승현씨는 베이징CCTV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비목어’의 주제곡 ‘오늘만 울거야’를 부른 데 이어 국내선 ‘U’란 예명으로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