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섬진강이 들려주는 봄 이야기

  • 입력 2012.05.02 00:00
  • 기자명 emddaily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야와 마음에 무엇 하나 거슬림이 없고
바람이 가슴 뚫고 지나듯 시원함과 평화로움의
대 자연이다.

계곡의 물 흐름소리와 녹차 향 그윽한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며 반주의 와인 한잔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세상 그 무엇도 부러울 것 없는 마음의 평화로운 행복, 바로 그것이었다. 먹는 것도 씻는 것도 한없이 느려지는 그 여유로움에서 느껴지는 행복을 만끽한다.




[1L]섬진강은 평화로움이 떠오른다. 따스한 햇살이 온몸에 퍼지며 평사리 벌판의 바람결에 따라 펼쳐지는 보리군무의 파노라마와 봄을 알리는 섬진강의 평화로움이 상기되기 때문이다. 섬진강의 봄은 연분홍 꽃비의 벚꽃도 연상되지만 진정 섬진강의 봄은 푸른 신록으로 피어나는 야생 차향기라 할 수 있다. 비탈 자락에서 가장 먼저 짙푸른 신록을 품어 봄의 푸르름을 만들어가며 그윽한 향으로 찾는 이들의 가슴까지 매료시키는 야생차밭은 진정 하동의 봄의 전령사라 할 수 있다.

2009년 봄 문화체육관광부의 생태탐방로 개발 답사위원으로 몇 번째에 찾아 왔던 섬진강 하동 그 당시 차 향기 물씬 풍기는 골짜기에서의 하룻밤도 그러했고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이기도한 평사리의 드넓은 들판에서 봄바람의 유혹에 그 까칠한 몸으로도 부드럽기 그지없는 율동으로 녹색의 운무를 보여준 그 파노라마에 넋을 잃고 도심생활의 찌들었던 마음을 한순간에 흔적 없이 날려버리며 자연의 행복을 만끽했던 그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때 그 은은했던 추억을 더듬으며 묵었던 계곡의 산장의 그 방을 다시 찾아 여장을 풀고 테라스로 나아가 따사로운 태양과 산비탈의 은은한 녹차 향을 흠흠 거리며 가슴 깊게 음미해본다. 여전히 계곡의 맑은 물 흐름과 물소리는 변함이 없이 그때 그대로 이다.

[2L]서울을 출발한 오전내의 운전에 피곤함도 은은하게 유혹하는 녹차 향에 이끌려 주변 야생차밭을 여유롭게 둘러보며 불일폭포 트레킹을 나선다. 아직은 절정의 녹음은 아니지만 갓 태어난 애기의 뽀얀 살결처럼 연녹색의 이파리 들이 깊은 계곡을 더욱 신선하게 가꾸고 있다. 길 따라 걸어가는 곳마다 신록터널을 이루어 가슴과 머리를 비롯한 온몸이 피부세포 까지 활짝 열려 절로 상쾌하다. 쌍계사 주변부터 화개 일대의 산과 밭은 온통 차나무로 장관을 이루어 공식 다원(茶園)이 20여개, 녹차를 재배하는 곳이 어림잡아 천여 곳에 이르고 흐르는 물소리가 요란한 계곡 언저리 비탈진 곳엔 푸른 숲 곳곳에 녹차 밭이다.

하동의 야생차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때 김대렴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왕래하며 녹차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자락 쌍계사 입구에 처음으로 심었다 하여 일주문 못 미처 차시배(茶始培) 추원비(追遠碑)가 세워져 있다. 화개의 야생차밭은 산비탈과 바위틈마다 듬성듬성 펼쳐진다. 멋대로 흩어져 군락을 이루고 있다. 보성차밭처럼 사람의 손길로 일부러 심어놓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돌보지 않아도 스스로 뿌리내리고 스스로 번식하며 고개를 들어 햇볕을 쬐며 싹을 틔운다.

어찌 저 절벽과 경사가 심한 비탈에서도 야생차가 저리 푸른 연녹색의 장관을 이루며 잘 자라나 물어보니 야생차는 뿌리가 바위의 사이사이에 깊고 곧게 내리므로 어떠한 기후 변화의 환경에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잘 자라며 옮겨 심으면 곧 죽는다는 절개 있는 독특한 녹차 향을 지녔다고도 한다. 원래 차나무는 바위틈에서 자라는 야생차를 으뜸으로 친다. 그래서 녹차라 하면 이곳 하동의 야생차를 으뜸으로 친단다. 임진왜란 때 한민족의 근성과 의지로 상징되기도 하여 일본인들이 모두 없애려 불을 수없이 질렀으나 봄이면 언제나 다시 싹을 틔우면서 지금처럼 번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약 2시간 정도의 여유로운 불일폭포 트레킹을 마치고 기왕 나선 김에 늦은 저녁을 하기로 하고 벚꽃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쌍계사를 향했다. 쌍계사의 십리 벚꽃 길은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함께 이 길을 걸으면 영원한 사랑이 이뤄진다고 일명 혼례길이라고도 불리 운다. 길가의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고 하얀 잎이 눈빛 날리는 멋스러움과 꽃잎이 길을 하얗게 덮어 봄의 싱그러움을 한층 더한다.

[4L]쌍계(雙溪)란 두 개의 시내가 흐른다는 뜻으로 신라의 정강왕이 쌍계라는 호를 내리면서 명명된 곳으로 쌍계사(雙溪寺) 절의 내력도 깊은 만큼 둘러볼 곳도 많다. 곳곳에 우아하게 핀 수국(水菊)들이 흐드러지게 수놓은 풍경이 절과 참 조화롭기도 하고 또한 무척 아름답다. 쌍계사 팔영루는 우리나라 불교음악의 창시자인 진감선사 혜소(眞鑑禪師 慧昭·774∼850)가 중국에서 불교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 민족에게 맞는 불교음악을 만들고 전파 시킨 근원지이자 훌륭한 범패 명인들을 배출한 교육장이며 이곳을 팔영루라고 명명 한 것은 진감선사가 섬진강에 노니는 물고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팔음률로 어산(절에서 재를 올릴 때 부르는 불교음악)을 작곡해서 명명된 이름이라 한다.

오래전에는 이곳에 오면 화개장터를 꼭 들러보곤 했는데 세월 따라 시대에 걸맞게 변화된 모습에 옛 정취를 느낄 수 없어 숙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숙소로 돌아와 계곡의 물 흐름소리와 녹차 향 그윽한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며 반주의 와인 한잔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세상 그 무엇도 부러울 것 없는 마음의 평화로운 행복, 바로 그것이었다. 먹는 것도 씻는 것도 한없이 느려지는 그 여유로움에서 느껴지는 행복을 만끽한다. 잠을 자는 것조차 아까워 테라스에 오래 머물며 낮 모른 몇몇 사람들과 함께 동화되어 계곡물소리와 바람의 코러스에 내 하모니카의 어울림이 달과 별들을 향해 울려 퍼진다.

내 여행 중에 눈이 뜨이는 시간은 언제나 새벽이다.
나의 여행은 낮선 곳에서의 새벽을 맞이하기 위한 것인 만큼 새벽을 즐기고 사랑한다.
새벽! 내게 새벽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설렘 그 이상이기도 하다.
이슬의 신선함과 세상의 삼라만상을 품고 있는 영롱함이 있고 안개의 신비로움이 그윽한 새벽의 그 느낌을 나는 사랑한다.

어쩌면 새벽이 자연의 원초적인 본래의 모습이고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까?
새벽이라야만 느낄 수 있는 신선한 공기, 차분하게 느껴지고 정제 되어있는 자연의 고요,
그 고요 속에선 무아의 경지에 빠진 듯 내 존재조차 의식 못할 때가 많다.
절대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새벽이기도 하고 때론 그 고요 속에서 나를 찾아가기도 한다.
어제 오후 내내 걸으며 보았던 계곡의 풍광이 또 다른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해있을까 하는 기대에 가슴이 두근거리며 그 신비로움에 내 마음이 묻힐 기대감에 신발을 신는 그 짧은 순간이 참 즐겁다. 이 작은 느낌들이 여행의 참 맛이기도 하고 살아있는 축복과 기쁨이 아닐까?

새벽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젯밤 테라스에서 함께 노래하던 이들은 이미 떠나고 강원도에서 오셨다는 한 부부만 식사를 하고 있어 합석하여 식사를 하며 새벽풍광 이야기를 들려주고 서로의 일정이 있어 작별인사를 하고 평사리를 향한다.
박경리의 대하소설‘토지’의 무대이기도 하며 어머니의 품 같은 지리산이 병풍처럼 둘러있는 평사리 들판은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시원한 바람의 교향곡에 춤을 추는 보리의 향연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사진기의 렌즈 자체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광활한 들판이다.

600년대에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 당시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원군인 위병의 섬진강 통로를 차단하기위해 구축하여 백제와 신라가 대치했던 것으로 추정된 고소산성 사이에 펼쳐진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 몸에 받은 약속의 땅이기도 하다. 옛날 중국 당나라 장수가 백제를 치러 왔다가 그 풍광이 중국 호남성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지세에 마음을 빼앗겨 악양, 동정호등 중국의 지명을 붙였다 한다. 평사리 들판의 멋스러움은 끝없이 펼쳐진 보리밭의 푸르름과 자운영 꽃밭이 한 폭의 수채화 그림처럼 수놓는 들판 풍경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최 참판 댁 가는 길이 제법 먼 듯 보이지만 지루함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따사로운 햇빛과 바람과 보리의 군무와 자운영의 화사함이 마음을 홀딱 빼앗아갈 만큼 아름다운 풍광의 사잇길을 지나 편안하게 감싸고 있는 지리산 품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조 씨 고가(趙氏古家 : 일명 조부자댁)에 이르러 옛 가옥의 정취가 그대로 숨 쉬는 고태미(古態美)에 홀딱 반한다.

조선의 일등 개국공신 조준(趙埈. 1346~1405, 본관 평양)의 직계손인 조재희(趙載禧)가
낙향하여 16년에 걸쳐 건축한 ‘조 부잣집’으로 동학혁명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사랑채와 행랑채, 후원에 있었던 초당, 사당 등이 불타 없어지고 안채와 방지(方池 : 경내에 있는 네모난 연못)만이 남아 옛 영화의 아쉬움을 더하게 한다. 이 집은 박경리 대하소설<토지>속
최 참판 댁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조금은 혼란스럽다. 유명한 소설속의 가공인물 하나가 역사속의 실존인물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3L]돌아오는 길에 평사리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풍광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시원함이다. 들판에는 작은 언덕과 구릉 하나 없는 푸르름이 펼쳐지고 오른쪽에는 하얗게 눈부신 모래톱 사이로 섬진강 물줄기가 은비늘마냥 햇빛에 반짝반짝 흐르고 있다.
시야와 마음에 무엇 하나 거슬림이 없고 바람이 가슴을 뚫고 지나듯 시원함과 평화로움의 대 자연이다.

봄의 섬진강엔 재첩국과 참게탕, 은어회가 맛깔스러운 별미가 가득하다고 하는데 특히 은어회를 찻잎에 싸먹으면 세상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입안에 달콤한 향기가 감돈다고 하지만
혼자 먹기엔 양도 가격도 만만치가 않고 재첩국 하나라도 안 먹고 떠나면 이 좋은 기억들이 모두 지워질 것 같은 생각에 국속의 재첩 한 알 한 알을 알알이 음미하며 '섬진강 따라 박경리 문학길'의 기억들을 가슴에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