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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까지 비워주는 회색빛의 겨울바다를 걷다

코끝이 떨어져 나갈듯한 애린 맛도, 정신을 맑게 하는 청량함이 진정 내가 원하던 것-

  • 입력 2014.01.16 11:59
  • 기자명 임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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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작은 골목의 눈 쌓인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접어든다, 마치 어린 시절 내가 살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소담스럽고 따듯한 풍경이다. 지붕에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이며, 처마에 서린 고드름, 굴뚝에서 나는 하얀 연기가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조심조심 동네 언덕을 넘으니 드넓은 회색빛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그래, 내가 원하던 무채색의 겨울바다, 바로 이것이야~

아주 오래전부터 가끔 한 번씩 우중충한 날이면 매콤하고 감칠맛 나게 피어오르는 라면과 김밥 한 줄이 생각나 들르는 꿈&들 이라는 분식집이 있다, 언제보아도 우애만큼이나 손발이 척척 맞고 자신들 모습보다 홀을 더 청결하고 깔끔함으로 나를 단골로 만들었다, 라면과 김밥 맛이야 어딘들 비슷하겠지만 그 청결함이 맛을 더했고 또 한 가지 더 나를 댕기게 하는 것은 언제부턴가 내게 만은 항상 애그후라이를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반가움 인사 속에 자리에 앉으니 밤새 일을 하고 해장을 하러 온 뒷자리 손님의 대화가 나를 솔깃하게 한다. 둘 중 젊은 사람이 불만 가득한 말투로 나라가 망해갈 조짐이라며 말 그대로 망할 망자 망년회라 하니 나이 좀 들은 분이 말하기를 망년회(忘年會)의 의미는 그런 망자가 아니고 안 좋은 일들을 있자는 망각한다는 의미로 한 해를 보내며 지난 일 중에서 버릴 것은 잊고 이어 갈 것은 새기면서 희망의 한 해를 준비하자는 의미라고 바르게 예기하지만 하여간에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가 망조라며 젊은이는 이해하기 힘든 열변을 토한다,
그 대화를 들으면서 문득 생뚱맞게도 가슴을 시원하게 해줄 무채색의 탁 트인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국민들과는 관련도 없을 것 같은 당리당략의 이해관계에 얽혀, 해야 할일과 하지 말아야 할일도 구분 못하고 쌈박 질만 해대는 정치꾼들의 아수라장 속에 2013 뱀띠해가 서서히 저물어간다. 12월초부터 하루걸러 이어지는 잦은 망년회 모임에 이젠 마음도 지겹고 몸도 피곤해 지고 있었다, 그래 생각난 김에 겨울바다에서 가슴속까지 짜릿한 칼바람의 짜릿함으로 쌓인 앙금 털어내고 마음을 새롭게 추슬러야지 하는 생각이 나를 휘감는다.
어제 컨퍼런스에서 심리학 교수의 말처럼 나는 우뇌보다 좌 뇌가 큰 모양이다. 어떤 생각을 할 때 항상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적 판단으로 몸과 마음이 쏠려 한번 필이 꽂히면 즉흥적 행동으로 옮겨야만 하는 것이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모르지만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한 시간 남짓 달려오는 동안에 존 덴버도, 피터폴&메리도, 페티페이지도, 오늘따라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나는 이미 영종도를 향해 달리고 있다, 눈뜬 시각이 새벽5시40분, 오늘따라 눈발도 날리고 평소 집사람이 똥차라고 핀잔주던 애마도 10여년 이상을 함께해온 이심전심으로 겨울바다로 향하는 것을 아는지 아주 부드럽게 미끄러지고 있다, 한 시간 남짓 달려오는 동안에 존 덴버도, 피터폴&메리도, 페티페이지도, 오늘따라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고속도로의 가로등도 오렌지색의 포근함으로 마음을 편하게 한다. 가로등 불빛아래 왈츠를 추는 듯 부드럽게 날리는 하얀 눈의 율동들을 보며 오늘을 선택하고 부지런을 떤 운칠기삼(運七技三)의 행운이기에 마음이 더욱 기쁨으로 충만 된다, 영종도의 잠진도 선착장에서 20~30분정도 배를 기다리는 동안 여명이 밝아오며 세상을 움트게 하는 기운을 만끽한다, 산이든 바다이든 아침이 밝아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의 기운(氣運)이다, 그 기운의 시작을 온전한 정신으로 바라본 다는 것은 내 삶을 윤택하게 하는 충전과 에너지의 원천이다, 그래서 나는 새벽을 좋아한다, 끼륵끼륵, 주변을 나는 갈매기도, 툴툴툴 거리며 정박하는 배도 아침의 기운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의도행 첫배(오전7시30분)에 차를 싫고 대무의도의 ‘떼무리’ 선착장에 차를 주차하고 소무의도를 건너는 다리에 올라설 때만해도 앞이 안 보이는 폭설과 바람으로 돌아갈 일이 걱정되어 몇 번을 망설였지만 지금의 기분으로는 만약 눈이 많이 내려 차량을 움직일 수 없어 돌아가지 못한다 한들 어쩌랴~ 일상의 틀 속에 짜여 내 몸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데 하루정도 못 돌아가면 어쩌랴~ 여행이란 본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내 던져질 때 아름다움 추억도 생기는 법이니깐 오히려 기대되기도 한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눈보라와 칼바람에 이미 소복하게 쌓인 좁은 다리를 달나라에 최초로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는 기분으로 걷는다, 첫배를 타고 건너온 부지런한 복 일까? 소무의도 주민들 자치회에서 입장료(청소비) 1,000원을 받는다는 글을 보며 가벼운 기쁨이 인다, 나는 가끔 이런 작은 일에 큰 기쁨을 느끼면서 한편으론 나는 참 쫀쫀한가봐 하며 스스로 질타 해보지만 기쁜 걸 어찌하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라고 말들을 하지만 간혹 있기는 하다. 나는 여명을 맞이하는 새벽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자주 국립공원 매표소를 공짜(?)로 지나친다. 그때마다 나는 굉장한 기쁨을 얻는다, 틈나면 산과들로 쏘다니는 나로선 어디에서나 입장료를 받는 것에 큰(?) 불만이다. 네 것도 내 것도 아닌 조물주에게 물려받은 우리 모두의 것에 왜 그래야만 하는가? 더더욱 싫은 것은 산에 가면 으레 절이 있기 마련인데 절 구경보다는 등산을 간다 해도 입장료 받는 행위는 심하게 표현하면 옛날 깊은 산속에 산적 때가 행인들 통행세 받는 날강도 행위와 무엇이 다르랴~ 신도를로부터 공양 받는 것으로 해결이 안 될까? 극장표, 미술관 표 한 장 에도 세금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은 입장료 받으면 국가에 세금이라도 낼까? 나의 생각이러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바닷바람이 차다기보다는 진정한 겨울바다의 참 모습을 한 치도 감춤 없이 보여주는 것이기에 눈물겹게 고맙기도 하다.
점점 심하게 날리는 눈발이지만 망설임은 접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내의 작은 골목의 눈 쌓인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접어든다, 마치 어린 시절 내가 살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소담스럽고 따듯한 풍경이다. 지붕에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이며, 처마에 서린 고드름, 굴뚝에서 나는 하얀 연기가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조심조심 동네 언덕을 넘으니 드넓은 회색빛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그래, 내가 원하던 무채색의 겨울바다, 바로 이것이야~ 갈망하던 신천지를 발견한 탐험가의 기쁨만큼이나 멋지고 흡족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비린 바다 내 음 물씬 풍기는 겨울바다를 왔음을 상기시켜주듯 바닷바람이 차다기보다는 진정한 겨울바다의 참 모습을 한 치도 감춤 없이 보여주는 것이기에 눈물겹게 고맙기도 하다. 멍멍한 가슴에 깊이 파고들어 에이듯 시린 짜릿함도 느끼게 하는 그런 바람, 머리가 혼돈스러울 땐 코끝이 떨어져 나갈듯한 애린 맛도, 정신을 맑게 하는 청량함이 진정 내가 원하던 것이기도 했다. 이 파노라마 속에서 나는 큰 소리를 원 없이 질러본다, 뭔지 모르지만 머리를 짓누르고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것을 털어내고 이 청아한 바람을 채우기 위해 여러 차례 큰 포효로서 몇 번을 토렴한다. 이곳이 박정희 대통령이 자주 휴가를 즐겼다던 인천대교가 아름아름 바라보이는 명사해수욕장이다.
어부들이 근처를 지나며 바라보면 선녀가 춤을 추는 모습 같다고 해서 무의도(舞衣島)라 한다. 원래 ‘떼무리’로 불리었던 소무의도는 약 2,5km의 해안선이 아주 편안하고 포근함과 함께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좋으나 크게 자랑할 만큼 똑 부러진 명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갯벌 냄새 물신풍기는 호젓하고 편안한 느낌의 섬이다. 해안절벽과 기암괴석 등의 바다 절경이 어우러진 해안 길을 걷다가 나무계단을 따라 정상을 오르는 동안 그 어느 누구도 소복하게 쌓인 눈 위를 지나간 사람이 없다. 명사해변에서 검은 것 다 탈어내고 깨끗하고 단정한 마음으로 오롯이 새 희망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행복의 순간이다. 정상 정자에 오르자 사통팔달의 어느 한 방향도 막힘없이 탁 트인 시야가 가슴을 시원스레 한다. 하늘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일까? 짙은 회색의 하늘에서 물고를 트듯 구름을 가르고 부챗살의 찬란한 빛을 내려 진한 회색의 바다는 금빛 물결로 일렁이는 파노라마의 장관을 보여준다, 아~ 아~ 나는 행복하다, 이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하다. 자연은 어쩌면 마법과 같아서 언제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항상 새롭고 인간들이 어찌해볼 수도 없는 멋진 파노라마의 장면들을 펼쳐준다, 그런 예상치 못했던 짜릿한 순간들을 나는 수없이 경험하고 있다, 사진기를 들고 욕심을 채우고 가면 원하던 풍광을 얻지 못해 실망을 안고 돌아온 것이 어디 한 두 번인가~ 오늘 내게 보여 지는 이 아름다움이 얼마나 벅찬 행복인가? 이 한 순간으로 일 년 동안 쌓였던 마음속의 찌꺼기들을 말끔히도 걷어내 주는 것에 감사한다.

맛은 접어두고라도 그 속이 뻔히 보이는 순진함의 미소가 멋진 망년회를 맞은 마지막 장면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듯하다.
소무의도를 들어올 때 밀물 때라 볼 수 없었던 굴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해안을 따라 장군바위를 둘러본다, 옛날 섬을 침범하려는 해적들이 시커먼 바위 형상과 아래에 하얗게 앉은 갈매기 때를 보고 장군과 병사로 오인해 노략질을 포기했다는 설화를 읽고 간 터라 웅장함을 상상하고 가보니 절로 웃음이 나오고 만다, 기상이 서린 형상이긴 했지만… 아마도 꽤나 순진한 해적아저씨들 이였나 보다. 돌아오는 다리위에서 공짜 입장의 기쁨이 낮 간지럽다, 동절기에는 안 받는다는 표시도 표시지만 들어올 때 다리위에 쌓였던 눈이 말끔히 치워져 있다, 에어펌프로 눈을 치우고 있는 주민에게 고맙습니다, 하고 깍듯이 인사드리며 이 추운 날,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정도의 배려라면 2,000원을 받으셔도 됩니다! 라고 말씀드리며 내심 부끄러움을 위로했다. 길가의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볼과 코가 빨갛게 얼은 듯하다, 주민들이 공동운영하는 식당에 서 바지락 칼국수를 시키니 조선족 아줌마가 해물 듬뿍 들은 비싼 칼국수로 드시라고 자꾸 꼬드긴다, 중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됐는지 생글생글 수줍어하는 미소에 맛과 값은 접어두고라도 그 속이 뻔히 보이는 순진함의 미소가 멋진 망년회를 맞은 마지막 장면의 아름다운 추억이 될듯하여 그러라고 했더니 이내 카운터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나 잘했죠! 라는 듯 눈웃음을 보낸다. 내년 갑오년에는 힘차게 달리는 말처럼 우리의 경제사정도 펄펄 날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본다.
<글, 사진 任容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