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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일에 대한 갈등이 없다면

정신이 건강한 사람

  • 입력 2016.03.14 14:24
  • 기자명 전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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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건강에는 여유만큼 좋은 것이 없다. 물론 여유를 갖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현대인 앞에 놓인 ‘경쟁’은 이제 내가 남보다 낫고 싶다는 차원을 넘어 ‘생존’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바빠야 하고 바쁘다 보면 여유를 잃을 수 있다. 하지만 여유가 있어야 힘들 때 다르게도 생각해볼 수 있고, 때론 경쟁이나 갈등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자신을 바로 볼 수도 있다. 정신 건강에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지혜다. 지혜는 지식과는 명백히 다르다. 책이나 문서를 통해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지도 않는다. 여유와 지혜를 얘기했지만 일반인들을 위해 교과서처럼 좀 더 자세하고 명쾌한 정의가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정신과 의사가 보는 ‘정신이 건강한 사람’에 대한 정의가 있어서 소개한다.

다음 여덟 가지의 정의를 모두 갖춘 사람은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언뜻 보기에 좋은 말만 다 모아놓은 것 같아도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 하나하나 중요한 요소고 이정표들이다. 위에 나열된 정의들이 자신에게 어느 정도 체득되었는지 살펴보고 부족한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간다면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앞에 나열한 여덟 가지가 너무 많고 번거롭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지도 몰라서 좀 더 간단한 정의를 소개할까 한다.

정신 건강? 과거에 대한 갈등이 없는 사람
정신 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1939)는 사랑하고 일하는데 장애가 없는 상태가 바로 정신 건강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했다.
사실 사랑하고 일하는데 장애가 없으려면 인간관계에 문제가 없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해야 하고, 현실적이어야 하고, 자신이 세운 목표를 꾸준히 추구해야 한다. 물론 자기 자신도 잘 알아야 한다. 앞의 여덟 가지 정의와 그 맥락이 다르지 않다.
그러면 우리 주위에서 이런 기준을 만족하는 정신이 건강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물론 붓다나 예수 혹은 공자 같은 성인을 꼽을 수도 있다. 최고의 정신 건강을 가진 분들이고 우리가 반드시 지향해야 할 인물들이긴 하지만 현실 속에서 모델로 삼기에는 적절치 않다.
그냥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그러면서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 세 분을 소개해 볼까 한다. 물론 이분들의 모든 부분이 다 정신 건강의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부분에서 정신 건강의 요소를 잘 찾아볼 수 있어 제시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분은 내가 잘 아는 분의 할아버지로, 지금은 생존해 계시지 않는다. 이분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이분이 남긴 한 일화에서 정신 건강의 진면목을 볼 수 있어 소개한다.
다소 엉뚱하게 들릴는지 모르겠지만 이분은 노름을 즐겼다. 한 번은 하룻밤에 노름으로 거의 집 한 채 값에 해당하는 돈을 잃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새벽에 똥장군을 지고 밭에 나가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어젯밤에 그런 거금을 잃고 일할 기분이 나느냐고 묻자 “일을 해서 벌어야지 또 노름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놀라움과 함께 이분이야 말로 정신이 건강한 사람의 대표적인 실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신의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했던 일이나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갈등이 없다. 말하자면 ‘내가 왜 노름을 했던가, 그 돈으로 노름을 안 하고 다른 것을 했더라면…’ 따위의 후회와 갈등이 없다. 여기서는 극단적으로 노름이라는 예를 들었지만 다른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노름이 옳거나 권장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인간의 취약한 부분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그 사람의 본모습이 더 잘 드러날 수 있다.
노름을 하고 난 뒤 후회하는 사람은 대개 양손에 떡을 다 쥐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름도 하고 돈도 따야 하는데 그것이 맘대로 안 되니 후회도 되고 갈등도 생기는 것이다.
이 할아버지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비록 그것이 노름일지언정 열심히 하고,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되면 그것이 바로 건강한 정신이다. 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나와 가까운 분이다. 지금은 돌아가셨다. 이분은 사업을 하셨던 분이다. 보통 사업에는 항상 부침이 있는데 이분은 별 실패 없이 평생을 사업을 해와 그 비결이 뭔지 궁금해 직접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이분은 내 물음에 대해 장황한 설명 없이 다음의 이야기만 간단히 하였다. 이분은 한국전쟁이 있기 전에 충청도 어느 도시에서 장사를 했다. 그런데 전쟁이 나서 피난을 가야했다. 이때 이분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에게 빚을 갚는 거였다. 그 후에 남쪽으로 피난을 갔다. 이 간단한 대답 속에 이분의 비밀이 있었다. 이분은 평소 신용이 없는 사람이 다니면 ‘시체가 다니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하였다. 이 말과도 연관이 있다. 보통 사람은 전쟁이 나서 피난 간다고 하면 돈을 떼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할 수 있다. 누구에게든 돈은 참으로 소중하고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 소중한 것을 나를 믿고 사람들이 빌려 준 것이다. 그것을 갚는 것은 사람의 도리다. 돈을 안 갚을 때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자신을 믿는 사람을 얻는 것, 이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특히 사업은 더욱 그러하다. 그것을 생각하면 안 갚을 수 없다. 그런 마음으로 돈을 갚고 전쟁이 끝나고 사업을 하던 곳으로 돌아보면 ‘누구누구는 보증수료’라고 소문이 쫙 날 것이다.

이분은 학교는 별로 못 다녔지만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가 많아 같이 이야기 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20여 년 전에 개원을 하였을 때 “찾아가는 장사는 어렵다. 찾아오는 장사를 해야지”하였다. 내가 정신과 의원을 개원했으니 이제 사람들이 간판을 보고 찾아올 것이니 괜찮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이분이 찾아가는 장사도 경험하고 찾아오는 장사도 경험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장사 초창기에 행상을 하며 이곳저곳을 물건을 팔러 다니다가 자금을 마련하여 가게를 열어보니 힘이 덜 들고 장사가 잘 되는 것을 경험한 데서 나온 지혜일 것이다. 이분이 종종 하는 이야기가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 옷을 화려하게 입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 야반도주하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은 장사가 잘되니 그렇게 했겠지만 자신이 있는 자리와 하는 일에 충실하지 않아서 그런 결과가 왔을 것이다. 이분은 사람들의 겉모습보다는 실제와 실상을 보았다. 이처럼 이분의 말은 다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실제 현실에서 다 적용이 되는 것이었다. 이분에게는 진정한 힘이 있었다. 현실에 맞게 할 뿐 의존심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사람은 소설 속 주인공이다. 일본소설 『불모지대』에 나오는 주인공인데 그렇다고 가공의 인물은 아니다. 1900년대 초에 태어나 전쟁을 겪었던 실존 인물이다. 『불모지대』는 일본 여류 작가 야마자끼 도요꼬가 쓴 소설인데 이 작가는 우리에게 『하얀거탑』이라는, 의료계를 무대로 한 소설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불모지대는 시베리아를 뜻하는데,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시베리아를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일본 육사, 육대를 수석 졸업하고 태평양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대본영(참모본부)에 배치를 받아 태평양 전쟁에 참여했다. 하지만 일본이 패전하면서 시베리아에 포로로 끌려갔다. 시베리아에서 11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다가 일본으로 귀국했다. 귀국하고 난 뒤에 한 행동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것을 보고 ‘이 사람은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사람의 입장에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일본 육사, 육대를 수석 졸업하고 대본영에서 근무했으면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했지만 지배층은 그대로 유지됐다고 했다. 그러면 아는 사람 중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 보통의 사람들은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닐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달랐다.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일을 했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일을 한다. 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 사람이 일본에 없었던 11년 동안 일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아는 것이었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들고 매일 국회 도서관에 가서 축쇄판 신문을 계속 봤다. 이것이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사람이 지난 11년 치의 신문을 다 읽었을 무렵에 어떤 사람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전을 개발하는 회사인데 이 사람이 필요해서 그러는 같이 일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다 듣고 나더니 같이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찾아 온 사람이 ‘직책을 뭐를 주면 되겠냐’고 물으니 일 하는 것이 중요하지 직책은 회사에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달라고 했다. 아마 대리 정도를 준 것으로 기억한다. 이 대목에서도 이 사람의 정신 건강의 일면을 보았다. 인정받고 대접 받으려는 마음이 없다. 일을 하다 보면 능력에 맞는 자리에 앉게 된다. 그 뒤에 이 사람은 이 회사의 설립자 다음의 자리에 오른다. 실제 이 사람은 삼성그룹이 재벌이 되는데 자문 역할도 하고 우리나라도 방문하여 신문 기사에도 났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럴 때 그 사람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위협을 느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것이 내 것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정신이 건강해진다. 정신 건강의 모든 요소를 다 갖춘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최소한 어느 한 요소는 가지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요소를 가진 사람을 보면 그것을 그 사람이 언제부터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 들어 내 것으로 한다면 내 정신이 점점 건강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