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디저널] 소년은 남부의 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와 함께 산 기간은 8개월 정도였다. 약 2년간의 결혼 기간의 대부분을 그의 아버지가 군대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소년이 태어난 후 곧 교통사고로 사망했다.소년이 어른이 된 후 그는 아버지의 과거를 알게 됐다. 28살에 사망한 자신의 아버지가 이미 두 번이나 결혼했었다는 것을 남들을 통해 들었던 것. 소년의 어머니는 물론 모르는 사실이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씩씩하게 일을 계속하며 소년을 키웠다.그녀가 만난 두 번째 남편은 음주벽이 심했다. 평소에는 소년과
[엠디저널] 의과대학에서 가장 어려운 과목은 ‘해부학’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본과 1학년에 들어가자 마자 우리는 이 무시무시한 과목을 이수해야 했다. 본래 문학과 음악과 춤추는 것에 심취해 있던 나는 적응하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해부학 교실은 클로로폼 소독약 냄새로 강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급우들 4명이 한 조가 돼 밤 11시까지 지정된 시신의 피부와 근육, 그리고 말초 신경의 한 가닥까지도 찾아내고 공부해야 했다.그때 내가 공부했던 안면 근육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미소 근육’이라고 부르는 ‘리조리우
[엠디저널] 남편 사후에도 카드를 보내오는 사람, 따뜻한 친구와 이웃의 사랑이 있는 곳, 고향오래전 세상을 떠난 남편은 한국의 전통 가요를 좋아했다. 그 당시에는 유행가라 불렀던 노래들이다. 전통적 한국 남자들의 공통점인지도 모른다. 한창 연애를 하던 4년 동안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따라 ‘아폴로’나 ‘르네상스’ 등의 서양고전 음악실을 드나들었다. 내가 철부지 문학소녀 티를 벗지 못했던 60년대 중반 때였다. 그런데 막상 결혼해보니 우리의 음악 기호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됐다.그의 뜨거운 열정은 당연히 ‘뽕짝’이었다.
[엠디저널] 도진순 교수의 주해가 달린 백범 김구선생님의 자서전 ‘백범일기’에 재미있는 사건이 쓰여있다. 그가 21세 되던 해(1896년) 치하포에서의 일이다. 한복을 입고 한국말을 하며 정탐을 하는 일본인 ‘스치다’를 주막에서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쾌남아답게 왜인을 죽인 후 백범이 7인분의 식사를 먹어 치우는 이야기이다. 물론 국모를 죽인 왜인들에 대한 복수를 이 일본 육군 중위에게 한 것인데, 백범이 떠난 뒤에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그 소년 장사는 밥 일곱 그릇을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먹더라는 걸!” 어느 인간
[엠디저널] 아기들은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사회적 동물이다. 갓난아기 때부터 이미 누군가가 방에 들어서면, 그쪽을 보고서 소리를 지르며 반긴다. 안아 달라고 온갖 몸짓을 다한다.그런데 이와 달리 아이가 저 혼자 이상한 행동을 반복하거나, 옆에 사람이 와도 관심이 없고, 전혀 반기는 기색이 없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말을 배우는 것이 느리고, 비록 말은 알아도 대화용으로 쓰지 않는 경우가 있다.과거애는 1만명중 2~3명 꼴로 발병한다고 믿던 이 병이 요즘에는 250명에 1명이라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많아졌다. ‘자폐증’이다. 대개
[엠디저널] 임상 조교수로 USC 의대에 출강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알게 됐다. 내가 수련의 과정을 할 당시에는 정신과 수련 과정이 3년이었는데 이제는 4년이 됐다. 1년이 더 늘었다. 1년은 젊은이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기간이 아닐 수 없다.4년 차 전공의들이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것이 소아정신과 실습이다. 그 실습 동안에 나는 이들을 도와준다. 이들은 어린아이들의 육체적, 사회적, 심리적인 성장 과정과 이에 따르는 문제 행동들을 이해하고 치료할 줄 알아야 한다. 적어도 소아정신과 의사에게 특별히 의뢰할 때까지는...그런데 이들의 반
[엠디저널] 내 환자 셜리는 75세의 백인 미망인이다. 몇 년 전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슬픔과 겹쳐서 또 다른 증상이 왔다. ‘공황장애’(panic disorder)라는 심한 불안증세이다.특히 집 밖을 나갈 때는 이 증상이 심해진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고, 숨이 가빠지면서, 꼭 죽을 것 같은 불안감이 온다고 한다. 손이 떨리고, 진땀이 난다고 한다. 몇 분간 이러한 상태가 지속 되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고 한다. 남편과 함께 살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고, 무언가 세상에서 끔찍한 일이
[엠디저널] Dr.B는 제가 일하는 카이저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동양계 의사입니다. 17년 전에 제가 이 병원 근무를 시작할 때, 처음 응급실에서 만났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환자를 응급치료하다 보니 한 번도 속 이야기를 나눌 경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Dr.B가 제게 조용히 다가오더니 딸의 이야기를 꺼내었습니다. 두 살짜리 아이가 무척 영리하고 밝은데 밤이면 잠을 자지 않는다면서 걱정을 하였습니다. 본래 스튜어디스로 일하던 아기의 엄마는 아주 직장을 그만두었답니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아무리 정성을 들이고, 사랑을 주어
[엠디저널] 15세의 소년읜 준수한 귀공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님은 오랫동안 많은 마음의 걱정을 해오셨습니다. 머리에 비해 학교성적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물론 요즘에는 대마초를 피우다가 발각된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오늘 소년의 임상 증상은 예전과 아주 달랐습니다.우선 저는 부모님께 바깥에 나가서 기다려주실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유태인 건축기사 아버지는 비록 소년의 어머니와는 이혼했지만 이들의 상담 시간에는 반드시 부모님이 같이 참석을 하셨습니다. 50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우울증을 이해하겠다면서 박사학
[엠디저널]말이 없는 아이아주 또릿또릿하게 생긴 여섯 살배기 소년이 엄마의 손에 끌려 찾아왔습니다. 영리하게 느껴지는 반짝이는 눈동자나, 엄마와 소곤거리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무슨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짐작이 가지 않는 소년이었습니다. 실력이 상당히 좋은 아이들만이 입학이 가능한 사립초등학교 1학년생이라 합니다.“이름이 뭐지?”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청각에 문제가 있나?’하고 의심하기에는 소곤거리는 소리일망정 엄마와 나누는 대화가 너무나 분명하고 문제가 없었습니다.“어느 초등학교에 다니지?”“좋아하는 친구 이름 하나만
[엠디저널]60세의 라틴 아메리카 주부는 한 달 전에 비해 아주 표정이 밝았습니다. 남편과의 문제 때문에 잠을 못 자고, 가끔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다가, 화가 날 때마다 사탕이건 과자건 먹어댔더니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는 그녀에게 제가 권고한 것은 다음의 다섯 가지였습니다.첫째, 30여 년 간 같이 살면서 느꼈던 남편의 문제점, 특히 음주벽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할 것.둘째, 나에게만 모든 기대를 걸어볼 것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이나 자원봉사를 찾아 볼 것.셋째, 새 친구를 찾아보거나, 옛 친구들을 새로운 마음으로 대할 것.
[엠디저널]이제는 어른이 된 세 아이들이 크는 과정에서 남편은 고등학교 시절 스승얘기를 많이 했다. 자신이 일생동안 “아버지와 나눈 이야기는 2백 마디가 안될 만큼 전통적 한국식 자녀교육”을 받은 그로써는 청소년기에 영향을 끼친 스승들이 ‘어른의 상’이었다.‘호드기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한문을 가르치신 강직한 노인이셨는데 숙제를 안 해오거나 떠들어대면 학생들 앞에서 본인의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호된’채찍질을 가하셨다고 한다. 비록 어린 학생들이라도 선생님께서 “내가 너희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이지 못했으니 대신 벌을 받으마!”